잼버리 사태로 돌아보는 지방 자치제: “풀뿌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일러스트=토끼풀

 
이번에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논쟁의 여지 없이 행정적인 재앙에 의한 실패였다. 이 대회의 실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탄식, 참가자에 대한 미안함,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인터넷을 통해 드러냈다. 특히 전라북도 및 호남지방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광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곳에서 보낸 나로써는 그 동안 인터넷에서 호남에 대한 수많은 조롱과 혐오를 맞이하면서 어느 정도 이러한 비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잼버리 사태로 인한 호남 비난의 물결은 그런 나라도 오랜만에 압박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잼버리 대회의 실패 원인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원인을 지목했다. 누군가는 “간척지인 새만금에서 대회를 개최한 것 자체가 문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2017년 선정 이후 민주당이 5년간 “삽질”을 한 결과였다고 주장하며, 혹은 현 정부의 여성가족부의 안일한 대처를 지목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호남에 대한 분노나 조롱,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보다도 호남 정치권이 매우 부패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호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잼버리가 열렸더라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한국 지방자치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고려해 볼 때, 호남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나 호남은 그러한 약점이 가장 잘 드러나기에, 해당 견해를 단순히 지역차별에 불과한 낭설이라고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부패”에 대해 인식도 다르고 둔감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드러난 부안군과 전북의 운영 실태를 통해 잼버리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인데, 세계 각국의 잼버리 개최지를 둘러보고 사례를 공부하겠다는 명목으로 크루즈 여행을 한다거나, 영국에서 버킹엄 궁전을 구경하고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관람한다거나, 파리의 디즈니랜드를 다녀오고, 일본의 와인 공장에 가서 시음회를 하는 등 잼버리 대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외여행을 국민 세금으로 다녀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잼버리 대회를 연 적도 없는 다른 국가들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공무원들의 해외여행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몇 년 전에도 꾸준히 있었고 제기된 문제들이기는 했으나, 부안군이 8월에 추가로 크루즈 여행 예산까지 수락했다는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 문제를 지방 공무원의 문제보다는 “호남의 문제” 로 인식하기 쉬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잼버리 대회 유치는 새만금의 SOC(사회간접자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 얻어오기의 핑곗거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호남의 지방정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인프라가 없으니 예산을 끌어와 발전시키자는 대의를 위해, 정작 중요한 과업을 당연하듯 내팽개친다. 사실 전북에서 대회를 열 작정이었다면 이미 시설이 훌륭하게 갖춰진 곳들이 여러 곳 있다. 무주의 태권도원이나, 완주에 있는 자연 휴양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새만금 개발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그 부적합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낙점되었다. 사실 투입된 예산과 역량을 온전히 잼버리 대회를 위한 투자에 투입했더라면 2015 후쿠오카 잼버리처럼 호평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후쿠오카 잼버리 역시 같은 간척지에서 개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산 빼돌리기” 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해당 지역의 공무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잼버리 대회를 통해 SOC 인프라투자를 위한 예산을 가져올 수 있었다”며 이를 숨기기는커녕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렇기에 “20조 예산”과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가 일어났던 것이다. 위에 소개된 공무원들의 출장을 빙자한 해외여행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정해진 곳에 쓰여야 할 세금을 다른 용도로 오·남용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부패에 둔감해져버린 안타까운 현장을 우리는 무엇이 원인이라고 여겨야 할까? 정말로 “호남 정서” 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다른 지방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던 것일까?
 

 


 
<모니터링> 없는 지방 자치제, 편향성 심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제

잠깐 질문하고자 한다. 누군가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다면, 그 사람은 윤석열 정부가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지 철저하고 청렴하게 감시할 수 있겠는가? 혹은 이재명 대표를 지지한다면, 그가 받고 있는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자 해도, 어느 누군가를 지지하는 순간 그 인물이나 상대방에 대한 “편향”이 깃든다. 내가 이재명 대표를 지지한다면 이재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인이나 수사하는 검사들을 보면서 하는 생각은 “부패한 것들이 청렴한 우리 대표님을 음해하려 한다”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에 악의를 부여하려 할 것이다. 출퇴근 시간, 영부인의 패션, 좋아하는 스포츠 등 사소한 것들조차 부패의 산물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따지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음해조차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듣기에는 좋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지지자를 제외한 나머지의 철저한 분투로 인해 정치인에 대한 감시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방 자치제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니터링이 중앙에 비해 그 중요도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프라와 중요한 정부 기관을 갖춘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나 이슈에 둔감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서울에 거주한 지 고작 6개월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인 A와의 대화”, “장관 B의 기자회견” 등 다양한 정치 행사가 개최되고,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마치 의도하지 않아도 정치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은 다르다. 지방은 소위 “스스로 행동하고 찾아나서야” 정치참여가 가능하다. 단체장이나 책임자가 시민들과 직접 간담회를 가지는 경우는 수도권에 비해 매우 드물다. 시민들은 불편한 사항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고, 시민단체가 직접 지방정부의 행정 관료와 연락을 취에 간담회를 열고, 필요하다면 주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등 직접 나서야 정치참여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으로 기대되는 세력은 해당 지자체장의 소속 정당과 대립되는 성향의 시민이나 단체에 의해 이뤄질 확률이 높다.

호남이 수십년 간 민주당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이러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임을 의미한다. 단순히 행정에 대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해 일종의 합리성이나 모순된 논리를 수용하게끔 한다. 예를 들어 복합쇼핑몰 문제가 그러한데, 광주시청 관계자들은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염려하며 대기업 복합쇼핑몰을 건설하는 것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오히려 소상공인들과 같은 품종의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식자재마트는 문제 없이 통과시켜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식자재마트를 보유한 것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호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남, 영동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방 정치에 대한 모니터링의 부재로 이와 비슷한 유형의 부패한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잼버리 사태가 가지는 국제적 망신과 더불어 호남에 대한 기존의 편견으로 지방자치제의 맹점을 호남 문제로만 보는 그릇된 시각을 만든다.
 

 


 
정치 스팩트럼을 넓히고, 지방 자치제의 장점 살려야

잼버리 사태, 공무원들의 태만과 부패는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결코 “민주당이 부패한 정당이라서”, 또는 “국민의힘이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서” 와 같은 단순무식한 이유가 아니다. 설령 숭고한 정신과 근본을 바탕으로 탄생한 결사체라 하더라도, 반대 진영의 모니터링과 견제가 부재하다면 언제든지 부패할 수 있다. 부패의 형태는 공천개입 및 관련 부당거래, 특정 이익단체 및 시민단체와의 겵탁, 예산 오남용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의 시민들이 받게 된다.

이번 잼버리와 과거 있었던 고성 잼버리대회의 성공을 비교하며 “지방 자치제는 역량 없는 지방이 세계대회를 유치하려고 하니 문제다. 지방 자치제를 폐지하고 중앙이 지역발전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지방자치제는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을 막고,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시민의 정치참여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하다. 지방 정치인 또한 시민들의 모니터링과 비판, 그것을 수용하고 정치를 수행함으로써 더욱 역량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지방 자치제가 진심으로 그리되려면, 영호남은 물론 전 지방에 모니터링을 비롯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 스팩트럼을 확보하려는 각 정당과 지역 시민단체의 자성, 지원,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단순히 예산을 확대하고 그것으로 도로나 건물을 세우는 게 아닌, 투명하고 효율성 있는 집행을 하는 것이 폐단을 막고 지방을 살리는 지름길임을, 지역 정치인과 시민들이 명심하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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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호. (2019). 지방관료의 부패로 인한 재난관리의 문제점과 법제도 개선방안. 부패방지법연구, 2(2), 63-93.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보고서 검색
박혜연, 잼버리 예산 1000억 어디 썼기에…“이제야 얼음물 맘껏 먹고 화장실 깨끗해져”, 조선일보, 2023. 08. 06.
김진영, “저질러 놓고, 시설은 이후에”… 11년 전 잼버리 유치 때부터 개최 능력은 ‘뒷전’, 국민일보, 2023.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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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현, 광주지역 식자재마트·중형마트 ‘동네 상권 독식’…규제엔 논란, 연합뉴스, 2020.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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