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싶은 당신에게 – 나의 마음을 선명하게 전하는 방법

일러스트=토끼풀

 
7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김소연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소설을 써서 대학에 가기 위해 소설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집 속의 문장은 본 적 없는 문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경한 시 구절을 마주했는데, 일상의 언어보다 명확하다고 느꼈다. 짧고 서정적인 시들이 전부인 줄 알던 때였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7년째 시를 쓰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다고 말하면, 저마다 알고 있는 문학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함께 기뻐지고 투명해진다.

누군가 내게 왜 시를 쓰냐고 묻는다면, 일상의 언어로 전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시가 추상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는 선명한 장르다. 얼핏 보았을 때 시는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 덕분에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가 받는 오해 중 하나다.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시의 문장 속, 뜻을 살펴보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다. 우리가 시를 읽고 나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민 끝에 나름의 해석에 가닿게 되는 시간까지가 시를 읽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통해 타인의 언어에 가닿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시는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끌어낸다. 더 선명하게 이해하고, 전하고 싶다면 시를 쓰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가끔 손쉽게 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금 더 망설일 필요가 있다. 망설일 때 비로소 언어의 불확실함을 깨닫게 되고, 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은 언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정확하다”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바를 ‘正’ 자에 굳을 ‘確’ 자를 쓴다. 자연에선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나뭇잎은 매번 다른 모양으로 자라나고, 바람은 매번 다른 곳에서 불어온다. 일정하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은 없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정확하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우리가 더욱 선명한 언어를 사용하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그보다 이전에 선행되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나를 이해하지 않고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타인보다 ‘나’를 먼저 생각한다. ‘나’에 골몰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 또한 때때로 타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의 마음 또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종종 타인이 되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시 쓰기의 첫 단계이다. 완전한 이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김소연 作 <수학자의 아침>

 
타인을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선명하게 전하는 방법으로 시 쓰기를 택했다. 그런데 나는 평소 선명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을 정말 사랑했는지 모르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가고 싶어서 도착한 장소에서, 왜 머물러야 하는지 몰라 혼란에 빠진 적도 있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다가도, 새로운 사랑이란 이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점점 흐릿해진다. 계속해서 흐릿해지다 보면 오히려 선명해지는 때가 오는데, 그럴 때가 시를 쓸 수 있는 순간이다.

“정확하다” 와 다르게 “선명하다” 는 자연스럽다. 고울 ‘鮮’ 자에, 밝을 ‘明’ 자를 쓴다. 다만 선명해지기 위해서는 흐릿해져야 하고, 흐릿해지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정확함을 잃어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가 바로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정확해질 것을 요구받는다. 정확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확한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실수는 신입 때나 용납된다. 그마저도 너그러운 상사에게나 그런 이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그런 정확함에서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어느 주말 아침,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가기로 할 수 있다. 간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섰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무덥게 느껴지던 바람이 갑작스레 시원하게 느껴진다면? 가을이 왔다는 생각이 들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이때까지는 그곳에 있는지 몰랐던 꽃이 피어 있고, 그 꽃이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다면. 흔들리는 것이 꽃뿐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까지 가닿는다면. 이질적인 감각을 발견하는 순간이 바로 시가 될 수 있는 재료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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